송창식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본관은 진천(鎭川)이다. 주요 히트곡으로 〈고래사냥〉, 〈우리는〉, 〈담배가게 아가씨〉, 〈한번쯤〉, 〈왜 불러〉, 〈창밖에는 비 오고요〉, 〈사랑이야〉, 〈가나다라〉 등이 있으며 현재 거주지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이다.
목차
1. 송창식 가수 프로필
2. 가수가 된 계기
3. 가수 데뷔 세시봉
4. 가창력 평가
송창식 가수 프로필
출생 : 1947년 2월 22일
고향 :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본관 : 진천 송씨(鎭川 宋氏)
신체 : 175cm
직업 : 가수, 작곡가, 기타리스트
배우자 : 한성숙
자녀 : 장남 송결, 차남 송빛터, 딸 송무늬
학력 :
인천신흥국민학교 (졸업)
인천중학교 (졸업)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 / 졸업)
송창식 나이 프로필 결혼 부인 고래사냥 과거 리즈 노래 자녀 입양
송창식 가수가 된 계기
송창식은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경기도 인천부 신흥동(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아버지가 전사하고, 이후 어머니도 행방불명된 뒤 조부모 슬하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지, 인천중학교 재학 때 "남들도 날 모차르트라고 불렀고, 나도 스스로 모차르트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경기음악콩쿠르 성악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공부도 잘해 늘 우등생 집단에 속했지만 그는 음악에 인생 목표를 정하고 제물포고등학교를 가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을 거역한 채, 서울예고 성악과에 입학하게 된다. 군경 유자녀 장학금과 심부름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겨우 이어가긴 했으나,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실기시험을 치르지 못해 결국 유급 통지서를 받아 그는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기로 하고, 결국 1년을 다닌 후 중퇴하였다.
8~9살 때 곡을 쓸 줄 알게 되면서 주변으로부터 '모차르트'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알렸다. "사람들이 모차르트라고 했다. 나는 모차르트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그래서 내가 모차르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모차르트가 누군지 알고 나니까 엄청난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예술고교 성악과에 진학했지만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송창식 가수 데뷔 세시봉
송창식은 세시봉 출신으로 1970-80년대 포크송계를 주름잡았던 가수로 윤형주와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윤형주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1970년에 솔로로 전향했다. 금전 관리가 철저했고 사업수완이 있었던 윤형주는 많은 재산을 축적해 재산가가 된 반면에 사람이 너무 좋아서 보증도 서 주고 돈도 꿔 달라는 대로 꿔 주던 송창식은 많은 재산을 잃었다. 물론, 송창식이 돈을 잘 벌던 시절에 알랑대며 돈을 꿔 간 사람들 중 제대로 갚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빈털터리인 것은 아니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작권료로만 매해 7,500만원의 고정 수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쓸 만큼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라 그 시절 돈을 꿔가고 보증을 서준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윤형주와는 트윈 폴리오를 하기 전 부터 절친한 사이였고 지금까지도 그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송창식 가창력 평가
송창식은 음악평론가 강헌이 말하길,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라 부를 수 있겠다고 했다. 수많은 히트곡과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며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맑고도 힘 있는 가창력으로 양희은, 어니언스 등과 함께 1970년대 한국 포크락을 주도한 한국 가요사에 남을 위대한 가수다. 세시봉-청개구리로 대표되는 초창기 포크음악에서, 싱어로는 아마추어를 완벽히 탈피했다는 평을 받는다.
송창식 특유의 감성과 노래 가사에 나타나는 주인공 행동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애드립부터 클래식 전공자답게 엄청난 성량까지 지닌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원래는 정확한 음정, 발음을 구사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부르는 미성이었는데, 트윈폴리오 끝무렵부터 창법이 변하였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가사를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는 소리를 내고 여기에 가사를 맞추는' 것이라 하며, 특유의 웅얼거리는 느낌이 완성되었다.
송창식 결혼 부인
송창식의 배우자는 서울예술고등학교 동기인 청주 한씨 한성숙(韓晟淑, 1948. 6. 14 ~ )씨이다. 송창식은 음악과이고 한성숙은 미술과여서 졸업 이후에는 인연이 없었는데, 1976년 12월 31일에 열린 동창모임에서 재회하자 금세 사랑 고백을 하고 보름 뒤에 부산 처가로 찾아가 결혼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한성숙 씨는 우석대학교로 진학하여 대학 시절에 메이퀸을 하기도 했고, 스튜어디스 생활을 거쳐 외국계 무역회사 한국 지사장 등 다양한 사업가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송창식의 명곡 중 하나인 '사랑이야'의 작사가이기도 한데, 이는 1977년에 송창식이 향군법 위반으로 감옥에 있을 때 면회 온 한성숙 씨에게 곡의 마무리를 맡기면서 이뤄졌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첫째 아들 송결(1978. 2. 11 ~ ) 외에 첫째 딸(송무늬), 둘째 아들(송빛터)은 모두 입양한 자식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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