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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로필
2. 코요테 데뷔 전 댄서 시절
3. 코요테 시절
4. 사업 실패 이력
5. 군입대 썰
김종민 프로필
출생 : 1979년 9월 24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본적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경주 김씨 (慶州 金氏)
신체 : 175cm, 74kg, O형
직업 : 가수, 방송인
가족 :
어머니 강신자(1953년생)
누나 김소연, 여동생 김미연
학력 :
서울창도초등학교 (졸업)
도봉중학교 (졸업)
도봉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
김천전문대학 (음악과 / 전문학사)
목원대학교 (독어독문학 / 학사)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 (언론학 / 석사 과정 수료)
종교 : 무종교
병역 :
법원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
(2007년 11월 15일 ~ 2009년 12월 18일)
소속사 : KYT엔터테인먼트(대표)
소속 그룹 : 코요태
포지션 : 리더, 메인댄서, 서브보컬
데뷔 :
2000년 10월 29일 코요태 로고 정규 3집 Passion (그룹)
2011년 4월 26일 디지털 싱글 오빠 힘내요 (솔로)
경력 : 안무팀 '프렌즈' 댄서 (1996년 ~ 2000년)
MBTI : INFP
김종민 코요테 데뷔 전
김종민은 학창 시절에 잠깐 체조를 배운 적이 있을 정도로 몸놀림 자체는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으며, 당시 서울 수유동의 한 클럽에서 자신의 스타일로 차별화된 댄스를 선보이며 댄스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특히 이 시절에는 SM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에도 참가를 했었다. 유영진의 댄서를 하라는 통보를 받고 불합격으로 생각하고, 포기를 했다고 한다.
김종민이 오디션을 볼 당시 비슷한 시기에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입문한 문희준이 그 사연을 듣고서는 그게 사실상 합격 통보였다고 답하며, 본인도 오디션 후에 댄서로 시작하라는 통보를 받고 무대에 몇 번 섰다가 데뷔한 케이스라고 답을 해 김종민에게 충공깽을 시전했다. 이는 결국 김종민이 댄서 제의를 수락했으면 H.O.T.나 신화의 멤버 내지 선배가 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김종민 댄서 시절
박남정 시절부터 이어 온 댄서 전문 안무팀 '프렌즈'에 정식 입단하여 1996년부터 R.ef의 찬란한사랑, R.ef의 가을의 기억과 구피의 많이 많이 무대에서 안무를 선보이며 댄서의 활동을 시작을 하였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엄정화의 전담 댄서로 비중 있게 활약하면서 정규 4집 앨범 포이즌, 초대, 정규 5집 앨범 몰라, 페스티벌, 스칼렛, 리모컨과 매니큐어 등 다수의 무대에 출연했다. 클론의 사랑+거짓말=끝 무대에서도 김종민의 모습이 보이며, 엄정화가 정규 5집 앨범 활동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간 2000년 상반기에는 이정현의 너, 김민종의 아름다운 아픔(댄스버전), 채정안의 편지, 조성모가 부른 잘못된 만남 등의 당시 인기 댄스곡 무대에 출연하면서 댄서 활동을 이어갔다.
김종민 코요테 시절
김종민은 복잡한 사정으로 코요태를 탈퇴한 원년 멤버 차승민을 대신하여 2000년 11월 1일에 발매한 코요태의 정규 3집 앨범 객원 멤버로 합류해 2000년 10월 29일부터 2001년 4월 7일까지 활동했다. 정규 3집 앨범 활동이 끝난 이후에 김종민은 코요태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코요태에서 탈퇴하려고 했었다. 이후 2001년 10월 14일부터 정규 멤버가 되었다.
코요태 정규 3집 앨범 활동 당시에 김종민은 잘생긴 외모와 댄스 실력으로 인기몰이에 견인차 역할을 했고, 김종민이 합류 후 코요태가 첫 1위를 하는 복덩이 존재였다. 객원 멤버 이상으로 코요태에서 역할을 잘 해주었고, 잘생긴 외모로 댄서 시절부터 많은 팬덤이 코요태의 인기몰이를 하기도 하였다. 2001년 10월 14일부터 정규 멤버가 되면서 2000년대 상반기 음반 시장의 급격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와 높은 음반 판매량 기록을 하며, 서울가요대상 본상 3년 연속, MAMA 본상 및 혼성그룹 부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4년 연속, 골든디스크 본상 5년 연속, SBS 가요대전 본상 3년 연속,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5년 연속, MBC 10대 가수가요제 2년 연속으로 수상을 하였고, 다수의 시상식과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수상을 하는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
김종민 사업 실패 이력
김종민은 데뷔 초 22살에 누에 술 사업을 하자고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결말은 모두가 예상한 바와 같이 입금과 동시에 사업하자고 한 사람이 사라졌다고 한다. 2004년 26살에는 누군가가 다가와서 같이 동업을 하자며 꼬드겼고, 그 사람을 믿고 4,000만 원을 투자를 했다. 그러나 끝내 그 사람이 4,000만원을 들고 튀었다고 한다.
2005년에는 방배동에 PC방을 차려 사업을 하였는데, 첫 번째 아르바이트생으로 예쁘고 착한 여학생을 고용했으나, 게임 중독자였다. 갈수록 매출이 떨어져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종민은 나중에서야 이 알바생이 게임에만 빠져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을 알았다. 결국 6개월 만에 PC방 사업에 실패를 했다. 방송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에게 운영을 맡긴 것이 실패한 원인이었다.
PC방 사업에 실패한 후 2006년 11월 논현동에 "어리버리"라는 양대창 전문점을 차려 두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매출 1,000만 원, 첫 달 매출 2억을 달성하는 등 운영이 잘 되는 듯했으나 여기도 몇 년 뒤 망한 것 같다. 2011년에는 또 아는 형을 믿고 자동차 구입을 목적으로 투자했으나 마찬가지로 사기를 당한다. 이 형 또한 돈을 들고 튀었다고. 2017년 9월 역삼동에 '시시꽃' 고깃집을 오픈을 하였다. 그런데 2019년 3월 3일에 1박 2일에서 망했다고 밝혔다.
김종민 군입대 썰
김종민은 허리디스크가 상당히 심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지만, 재검을 받을 경우 면제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종민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저는 댄스 가수고 사람들은 방송에서 제가 춤추는 모습을 좋아하시는데 어떻게 안 추겠어요~ 연예인이라고 해서 면제 받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요. 공익이라도 다녀올래요. 그냥 다녀오는 게 편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고, 정말로 몇 달 후 방송을 그만두고 공익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과거 스태프가 네이트 판에 글을 올리며 복귀 후 부진한 예능감으로 욕을 먹더니 이번에는 현역이 아니라 공익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글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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