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는 생전 여운계와 절친한 사이였다. 신인 시절 전원주가 무명배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스타가 된 여운계가 전원주를 많이 위로해줬다고 한다. 하루 일과를 아침에 여운계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시작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둘이 나들이를 나갈 때면 늘 여운계가 운전을 했다고 전해진다. 2009년 여운계가 타계했을 때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켰고, 여운계가 세상을 떠난 뒤 잠시동안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목차
1. 전원주 배우 프로필
2. 가정사
3. 교사 시절
4. 성우 데뷔
5. 주식 제테크
전원주 배우 프로필
출생 : 1939년 9월 20일
고향 : 개성시
신체 : 150cm, 51kg, 220mm, AB형
가족 : 배우자 임진호, 아들 2명
학력 :
만월국민학교 (중퇴)
덕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종교 : 불교(법명: 대원행)
데뷔 : 1960년 CBS 성우극회 5기 공채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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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 가정사
전원주는 경기도 개성부에서 인삼농사를 크게 짓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식구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오게 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한동안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이 때 이주한 곳이 인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피난 생활을 하느라 초등학교는 졸업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다시 좋아진 이후에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였는데 처음에는 학교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에게 사정을 한 끝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한 끝에 졸업식 때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었고 피난 오느라 학업이 끊긴 전원주의 공부에도 신경을 써서,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원주의 학창 시절인 1950년대 말의 대학진학률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낮았으니, 엘리트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남녀차별도 심했던 시절이라, 남자에 비해 여자의 대학진학률은 훨씬 낮았다.
전원주 교사 시절
원래부터 배우에 뜻이 있었다. 본인이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교사로 일하던 시절 키가 너무 작아 칠판에 글씨를 쓰기가 힘들어 배우로 전향했다고 한 적이 있다. 웃자고 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 때문에 꽤 스트레스도 받았던 듯.
또 본인이 직접 밝힌 이유로는, 훈육주임이 여학생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차례로 뺨을 때리다가 끝에 서있던 작은 키의 전원주까지 학생인 줄 알고 뺨을 때려 기절까지 했다고. 대학교 졸업 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60년 성우로 데뷔했으며, 1972년 배우로 전향했다.
전원주 성우 데뷔
전원주는 1960년 CBS 5기로 입사했다가 1963년 DBS 1기로 재입사하였다. 이후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 6기로 분류되었다. 성우 시절에는 비중 있는 역할도 자주 맡는 등 잘 나갔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TV 보급률이 낮아서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가 TV 드라마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성우들의 인기가 높았다.
이 성우들이 1970년대 TV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TV와 영화로 넘어 왔기 때문에 성우 출신 배우들이 원로배우들 중에서는 많은 편이다. 이순재, 김무생, 사미자 등이 제일 잘 알려졌지만, 양택조도 성우였었다.
전원주 배우 활동
전원주는 원래부터 배우에 뜻이 있었다. 배우가 되면서부터 오랜 기간 무명 생활을 겪었다. 당시 방송계에선 너무 못 생겨서 곤란하다고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식모 역할만 꾸준히 주어졌다. 심지어 58세 때인 1996년에 한 드라마에서 외출 나온 군인들의 전투모를 벗겨가서 화대와 교환하자고 하는 매춘부 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후반에 개그우먼 김미화의 추천으로, 배우 생활 처음으로 성인대상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에 주요 구성원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코미디 세상만사의 코너 '사미인곡'에서의 부잣집 푼수 아줌마 역할이 그것이다. 거기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다음에 또 모이면 떼레뽕(텔레폰) 때려줘', '된장 뜨러 간다 된장 뜨러 가'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켜 재미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게 되며, '전원주가 부잣집 마나님 역할을 해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인식 또한 만들게 된다.
그리하여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이슈 연예인이 되어, 점점 더 큰 인기를 가지게 된다. 이 때부터 광고도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고, 드라마에서의 출연 빈도수도 늘고, 역할도 부잣집 부인 역할도 점점 하게 된다. 그녀가 출연했던 인기 드라마들도 '요즘 인기 있는 전원주 덕을 봐서 더 잘 되었다'는 평가도 공공연하게 있었다.
전원주 주식 제테크
전원주는 절약이 재테크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주식책을 저술했고, 우량주를 매수해서 3년 이상 버티는 전략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미지랑 다르게 의외로 단순하게 모으는게 아니라 사업보고서 분석법, 재무제표 분석법을 꼼꼼하고 깐깐하게 분석하고 분할매매로 리스크도 분산하여 첫 투자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돈 550만원으로 3,000만원이라는 600%의 수익률을 올리고 국제전화 CF로 받은 광고료 5,000만원도 주식을 해서 1억 8,000만원으로 불렸다.
매일같이 증권사 객장에 가서 공부하고, 투자금을 점차 늘려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증권사 회장과 대표도 찾아왔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무려 IMF 때 남들은 건물값이 폭락해서 마구 파는 와중에 오히려 상가를 구매하여 그 상가가 현 시가 30억정도 된다고. 이렇게 돈이 많지만 실제로는 억척스럽게 절약하는 편이라 방송국 출퇴근시에 차를 사도 되는 여력이 되는데도 십수년간 대중교통을 이용한건 유명한 이야기.
전원주 결혼 사별 재혼
전원주는 28세에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했는데 영등포 일대에서 유명한 의사집안이었다고 한다. 첫 남편과 2년만에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은 폐결핵으로 일찍이 작고했다. 두번째 남편은 아들 하나를 가진 재혼남이었고 전원주는 아들들이 재혼 때문에 주눅들까봐 아들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고 한다.
두번째 남편은 난봉꾼으로 사업을 한다고 친가와 처갓집 돈을 탕진하고 여러 여자를 만나며 파주에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부양은 전원주의 몫이었고 억척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두번째 남편은 2013년 작고했는데 남편의 여자들이 장례식에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키웠으며 전원주는 일하느라 어머니 노릇을 못해서 아이들과 멀어졌었지만 2015년 여름 EBS 리얼극장에서 아들과 함께 7박8일 중국여행을 다녀오며 다시 가까워졌다.
전원주 인스타그램 주소 : https://www.instagram.com/joo3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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