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나이 프로필 키 결혼 드라마 영화 광고 과거 리즈 세종 김사부
목차
1. 배우 프로필
2. 배우 데뷔 전 성우
3. 배우 데뷔
4. 주요 출연작 드라마 영화
5. 슬럼프 침체기와 공백기
6. 부활 반등의 계기
한석규 배우 프로필
출생 : 1964년 11월 3일
고향 :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청주 한씨
신체 : 178cm, 64kg, 270mm, AB형
가족 :
배우자 임명주(1998년 결혼~현재)
장녀(1999년 7월 31일생)
차녀(2001년생)
장남(2003년 5월생)
차남(2006년 6월 14일생)
학력 :
서울숭례국민학교 (1977 졸업)
용문중학교 (1980 졸업)
용문고등학교 (1983 졸업)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 무종교(무신론)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제27보병사단 의병전역
소속사 : 클로버컴퍼니
데뷔 :
1990년 KBS 성우극회 22기
1991년 MBC 제20기 공채 탤런트
한석규 배우 데뷔 전 성우
한석규는 원래 배우가 꿈이었으나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1990년 KBS 성우로 입사했다가 이듬해 1991년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된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성우 한석규를 기억하는 몇몇 오래된 성우팬들은 그를 ‘소년과 청년 역에 잘어울리는 높고 부드러운 미성을 가졌던 젊은 성우’로 회고하기도 한다.
1999년 씨네 21과의 인터뷰를 보면, 성우로 입사했을 당시 절친한 선배인 장세준 성우가 "넌 성우도 어울리지만 내가 보기엔 배우가 더 어울린다."는 말에 도전하여 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장세준은 TBC 공채 배우 출신이었다가 KBS 공채 성우로 전향한 케이스이다.
한석규 배우 데뷔
한석규는 1990년 KBS 성우극회 제22기로 입사하여 성우로 활동하다가 이듬해인 1991년 MBC 탤런트 공채 제20기로 재입사, 1993년 《아들과 딸》을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1994년 《서울의 달》의 출연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후 활동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겨 충무로에서도 흥행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그 때부터 TV보다는 영화에 전념했다.
한석규 주요 출연작 드라마 영화
한석규는 데뷔작인 《닥터봉》부터 《쉬리》까지의 연속적인 흥행 성공으로 199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끌었지만 1999년 《텔 미 썸딩》이후 긴 휴식기에 들어간다. 3년 간의 공백을 깨고 고소영과 출연한 《이중간첩》의 흥행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경력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으며 2006년 이범수, 김민정과 같이 공연한 《음란서생》을 제외한 다른 영화들이 매우 저조한 흥행 실적을 기록하였다.
2011년 10월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16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 재기에 성공하며 데뷔 후 첫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3년 뒤인 2014년 9월 동사 드라마 《비밀의 문: 의궤 살인 사건》에서 영조 임금 역할로 출연했으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2016년 11월 동사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두번째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 영화 《프리즌》에서 교도소의 절대 제왕 익호 역으로 데뷔 27년 만에 첫 악역을 연기했다.
한석규는 1990년대 중 ,후반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와 탁월한 작품 선택으로 한 시대를 평정하였고,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1990년대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사로 잡으면서 한국 영화 역사에 새겨넣은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1980년대 안성기가 충무로의 황제로 영화계 전반을 장악하던 흐름이 90년대에 와서 문성근, 박중훈, 최민수, 이경영 등 신진의 등장으로 점차 파이가 분할되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다양성이 발화되던 영화판을 일시적으로 한석규 1인의 시대로 봉합했으니 그 위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2000년 이후로 흥행 부진을 겪었으나 사극, 블랙코미디, 스릴러, 정치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작품 선정과 더욱 원숙해진 연기력을 바탕으로 2010년대부터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석규 슬럼프 침체기와 공백기
한석규가 한때 하락세를 겪었던 원인은, 본인의 행실이 나빴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었다. 충무로 진출 이후 단 한 번도 실패작에 출연하지 않았고, 비평에서도 실패한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1990년대 중, 후반은 독보적인 원탑이었다.
2003년 1월 영화 이중간첩으로 복귀하기까지 3년 2개월 이라는 공백기를 지난다. 하지만 3년 2개월 동안 마냥 쉰 것만은 아니었다. 신약 개발과 관련된 SF물인 <제노사이드>,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광우>에 캐스팅되어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광우의 경우 제작사에 문제가 있어서, 제노사이드는 시나리오 수정이 되지 않아서 영화가 무산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석규는 결국 2003년 프리미어에 손예진과 함께 과대평가된 배우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아이러니하게도 1996년 6월 프리미어에서 선정한 한국 배우 평가에서는 한석규가 당시 최고의 배우로 평가를 받았던 안성기, 박중훈, 문성근, 이경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석규 부활 반등의 계기
이층의 악당까지 실패하자 한석규는 15년 간 하지 않았던 TV 드라마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2011년 하반기 SBS 수목 드라마인 뿌리깊은 나무에 세종 역으로 복귀. 욕쟁이 세종. 그 결과, 예상대로 2011 SBS 연기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7년 1월까지 방영됐던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1화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첫방부터 막방까지 전체 월화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최고 시청률 27.6%를 기록하며 2016년 SBS 드라마 시청률 1위에 등극했기에 '뿌리깊은 나무' 이후 또 다른 그의 히트작이 되었다.
댓글